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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선족 사회의 새 바람(2006.6.14.)

조선족 사회의 새 바람(2006.6.14.)


[김태훈의 중국 여행기] 국경의 북쪽

① 연변엔 ‘경주최씨’가 있다

② 조선족 사회의 새 바람

③ 항일의 발자취를 찾아서

④ 중국史에 ‘만주국’은 없다

 

  ▲ 중국 동북부의 대도시 장춘(長春)시 한 구석에 있는 삼성전자 ‘애니콜’ 서비스 센터. 중국인들은 영어의 ‘센터(center)’를 ‘中心’으로 번역해 쓴다.

 

    요즘 중국 연변(延邊)의 조선족자치주(朝鮮族自治州)는 물론 길림성(吉林省) 전체의 조선족 사회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KBS 2TV에서 방영 중인 <서울 1945>입니다. 비슷한 시간대에 중국 TV 채널에서도 <어머니의 눈물>이란 제목의 아주 재미있는 드라마가 방영 중인데 주로 남자들이 <서울 1945>를, 여성들이 <어머니의 눈물>을 각각 보고 싶어 하는 통에 ‘부부싸움’도 종종 일어난다는군요.


    길림성에선 케이블 TV만 설치하면 한국의 KBS 채널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연길(延吉)시의 호텔에서 한국 방송을 마음껏 시청했죠. 숱한 한국산(産) 프로그램들 중 유독 <서울 1945>가 중국 조선족의 마음을 사로잡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해방 후 친일파들이 한국 사회의 주류로 변신하는 과정을 솔직히 묘사한 점, 김일성·박헌영·여운형 등 좌익 인사들의 활약상을 비교적 공정하게 그린 점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드라마 속 김일성이나 박헌영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런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게 기쁩니다.” “전에 <야인시대>란 드라마는 한동안 보다가 그만뒀습니다. 공산주의나 공산주의자의 묘사가 순 엉터리였으니까요. 하지만 <서울 1945>는 다른 것 같아 유심히 시청하고 있습니다.” 연변 일대에서 만난 조선족들이 앞 다퉈 내놓은 반응입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전까지도 중국 조선족들의 마음속엔 ‘우리의 모국(母國)은 북조선’이란 의식이 보편적이었다고 합니다. 연변 주민들의 말투가 북한 사람의 그것과  비슷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북조선의 평양에서 쓰는 말을 조선어의 표준으로 삼아라!”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길림성에 조선족자치주가 생긴 뒤 조선족 학자와 교육기관들에 떨어진 명령입니다. 1945년 이후 북한이 공산주의 노선을 걸으며 중국의 ‘맹방(盟邦)’이 됐으니 당연한 일이죠. “솔직히 1990년대 중반까지도 남조선, 아니 한국은 미(美) 제국주의의 괴뢰쯤으로 여겼습니다.” 한 조선족 노인의 회상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연변 조선족들은 목돈을 벌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으로 떠났고, 한국은 중국에 있어 북한보다 훨씬 중요한 교역 상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조선족들의 마음속에 슬그머니 ‘우리의 모국 = 한국’이란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북한 대신 한국 말투를 닮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는 북한 경제, 그럼에도 개혁·개방을 한없이 미루는 북한 지도층에 대한 분노 또한 한몫 했습니다. “인민(人民)이 배불리 먹고 사는 게 진정한 사회주의다!” 북한에 비판적인 조선족들은 이렇게 단언합니다. 물론 중국 조선족 사회가 요즘 너무 한국 쪽으로 편향되는 것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한 조선족 지식인은 “옛날엔 북조선이 무조건 옳다던 사람들이 이젠 한국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며 “이런 줏대 없는 태도는 중국 조선족 스스로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짓”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중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한국에선 <서울 1945>가 정치적 논란의 소재가 돼있더군요. ‘이 드라마가 이승만, 조병옥, 장택상 등 건국 주도세력을 비방하고 좌익을 미화했다’는 우익 진영의 비판이 바로 그것이죠. 이들은 드라마의 조기 종영과 제작진의 대국민 사과까지 요구한다니, “모처럼 좋은 드라마를 만났다”며 기뻐하는 연변 조선족들이 알면 깜짝 놀랄 일입니다. 픽션(fiction)은 그저 픽션일 뿐인데 우리 보수 진영은 왜 그리 관용이 부족할까요? 중국 조선족들은 <서울 1945>에서 ‘한국 =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근거를 발견했건만, 정작 한국 일부 지식인들은 ‘<서울 1945> 방영 = 반(反)자유민주주의의 증거’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장춘시의 야타이(亞泰)호텔 전경. 장춘에서 머문 2박3일 동안 이용한 곳이다. 침대 두 개짜리 방 하나의 하루치 숙박료가 250元(약 3만2000원)이다. 비교적 깔끔한 ‘삼성(★★★)급’ 호텔인데,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게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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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5 16:25 2008/06/2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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